신앙 공동체의 해
-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기다리며 -
1.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천년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삼천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하느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이지만 유한한 인간에게는 천년을 끝맺음하고 다음 천년으로 접어든다는 것이 의미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구세주 강생 2000년을 전체 교회의 대희년(大禧年)으로 선포하셨습니다. 1996년까지는 대희년 준비 첫단계로 정하시고, 다음 단계로 1997년은 그리스도의 해, 1998년은 성령의 해, 1999년은 성부의 해로 각각 정하시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서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도 지난 정기총회에서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삼천년기를 향한 교회 사목을 집중 연구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교구도 이러한 세계 교회의 사목 방향에 발맞추어 금년을 2000년 대희년 준비를 위한 해로 정하고 특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안에서, 그 신앙으로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참 신앙의 빛으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함께 고백하며, 교회 내의 작은 모임에서 큰 모임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실현시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현대 신앙의 위기
2.현대인은 물질 문명이 발전함으로써 누리게 된 안락한 생활 때문에 영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신자들도 쉽게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예가 많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 생각하고, 지금 자기에게 편하고 유익한 것만이 진리이고 선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 보다는 현세적인 삶에 집착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인간 생활에서 초월적인 의미는 상실되고 개인이나 어떤 집단 중심이나 상황 중심의 윤리 때문에 도덕적 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우리 나라는 국가 원수를 지냈던 분의 비리 때문에 국민들의 도덕 의식은 여지없이 상처가 났으며, 윤리 도덕이나 사회규범의 이중적인 가치 기준이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정이나 학교 및 성당 내에서 사는 규범과, 사회 안에서 사는 규범이 서로 다른 이중적인 기준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치관의 큰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이러한 도덕적 혼란을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생명과 가정을 존중하는 근본 가치들에 대한 혼란이 신자들의 삶까지도 영향을 미쳐 많은 신자들이 세속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 풍토에 젖어 있습니다”(제 삼천년기 36). 하느님을 배제한 현세 중심의 세속주의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순전한 인간적 지혜’로 보고 인생살이의 한 처세술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선교사명 17).
3. 더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전통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고, 많은 신자들이 한국의 무속적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세속적인 여러가지 이유로 신앙생활을 포기하거나 세상과 쉽게 타협하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참된 신앙생활의 맛을 모르고 기쁨과 희망을 상실한 상태로 권태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개인 중심의 신앙생활에 젖어서 종교 무관심주의에 물든 이웃들에게 자기 신앙을 떳떳하게 표현하거나 선포하지 못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많은 영세자를 내려고 노력하는 만큼 냉담교우들이 늘지 않도록 서로 도우면서 신앙생활에 대하여 깊이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4. 신앙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성자를 인간이 되게 하셔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갈구하는 인간에게 참된 길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볼 수 없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이 되신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구를 대하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들과 사귀시면서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 초대에 인간이 합당하게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특성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와 구별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란 더 이상 ‘하느님을 더듬어 찾는 것’(사도 17, 27)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응답입니다」(제삼천년기 6).
5. 신앙내용은 사도 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근원이시며 궁극 목적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습니다. 모든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 밖에는 없습니다”(사도4, 12). 우리는 또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며(갈라 4,6) 예수님을 ‘우리 주님’이라고 부르게 하는(1고린 12, 3)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 이외에 다른 아무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6. 신앙은 하느님의 계시 진리 전체에 대하여 우리가 자유로이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인 성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계시 내용에 대한 지식이 곧 신앙은 아닙니다. 새 교리서에서도 그리스도교는 기록된 문자의 종교가 아니라 ‘강생하고 살아계신 「말씀」의 종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108장).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서의 말씀이 죽은 글자로 있지 않고 우리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있습니다. 신앙인
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자기를 온전히 의탁합니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이 세상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을 때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어떤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고 믿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하는 신앙은, 인간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얻게 되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초자연적인 덕입니다. 믿는 자들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에서 받는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이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곧 신자의 존엄성입니다.
신자의 존엄성
7.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이 세상에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신앙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아셨습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인 이스라엘이 당신을 믿지 않으신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이 많습니다(신명 1,32;9,23; 민수 14,11; 시편 78,22;108,24;78,32; 이사 22,11; 2열왕 17,14 참조). 예수께서도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뚫어졌을까?’ 하고 탄식하셨으며(마태 17,17; 마르 9,19), 제자들의 믿음이 약하다고 꾸짖으시기도 하셨습니다(마태 6,30; 8,26; 14,31; 16,8; 루가 12, 28).
8. 신앙도 사랑과 같이 인생의 고뇌나 시련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도 언제나 의심과 싫증, 권태와 시련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운하게 태어났다고 신앙을 거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사랑받고 은혜롭게 태어나 자란 사람중에 흔히 어떤 분을 믿기보다는 자기 자신들만 믿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 고통에 직면하여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기도 하지마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 안에서 이미 하느님의 현존을 보게 됩니다. 믿는 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하느님은 믿는 자들의 삶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스승보다는 증거를, 주장보다는 경
험을, 이론보다는 실천을 더 믿습니다’(선교사명 4). 신앙의 증거가 참으로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신앙의 증거야 말로 우리가 신자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신앙 공동체
9. 신앙이 비록 먼저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으로서 개인적인 행위일지라도 믿는 일은 고립된 행위가 아닙니다. 누구도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자기 혼자서 믿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신자이기 전에 같은 신앙고백과 같은 전통을 가진 ‘백성’의 일원이요,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이 신앙 공동체의 모태는 우리 어머니이신 교회입니다. 교회의 신앙은 우리의 신앙보다 앞서 가며 우리의 신앙을 낳고 길러주고 지탱시켜 줍니다. 성 치쁘리아노는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을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요 우리는 한 어머니에서 태어난 신앙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이 신앙 공동체의 중심에는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함께 나누며 하나의 살아있는 공동체를 이룹니다. 개개인의 신자들은 이 살아있는 공동체 안에 삶으로써 신앙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진리와 생명 등, 모든 선은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각 신자들에게 전달되고 각 신자들이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공동체에 속한 모든 신자들이 함께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신앙 공동체의 친교이며 우리가 고백하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입니다.
10. 교구나 본당 내에 있는 모든 신자들의 모임들은 언제나 신앙 공동체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모여 있는 공동체이지 이념이나 혈육으로 모인 단순한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한갖 사회적 종교 단체가 아니라 참 신앙으로 살아있는 공동체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 공동체의 생명의 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샘에서 새로운 생명의 물을 마시는 신앙인이 되어야 겠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기다리며
11. 희년이란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께 특별한 양식으로 봉헌된 시기입니다.’ 모세 법에 따르면 매 7년째 되는 해를 안식년으로 선포하고 이 안식년이 일곱번 되풀이 되고 난 다음 50년 마다 돌아오는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간 중에는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경작지를 휴경하고, 노예들은 모두 자유롭게 해방되었습니다(출애 23, 10-11;레위 25, 1-28 참조). 희년의 규정들은 오늘날 사회 교리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희년의 근본 사상은 세상 만물에 대한 주권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만 속한다는 것이며, 풍요로운 창조계는 전 인류의 공동자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그러나 희년의 본 뜻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사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의 이상과 희망 사항으로 거행되던 희년은 장차 오실 구세주께서 실현하실 참된 자유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이사 61, 1-2). 예수께서는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읽으시고 난 후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 21)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가 대망하던 구원의 날이 당신안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희년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의 활동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구세주 강생 2000년을 특별한 의미로 경축하고자 하는 것도 구세주 예수께 대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널리 선포하자는 뜻입니다.
13. 우리는 2000년 대희년을 기다리면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희년의 정신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희년이 은총의 해가 되기 위하여 ‘죄와 그에 따른 벌을 사해주는 용서의 해, 상반된 집단 사이의 일치를 이루는 화해의 해, 참된 회개와 신앙으로 거듭나는 참회의 해’가 되도록 해야
겠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며, 회개하고 보속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생명을 전하는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이 신앙 공동체의 힘으로, 우리는 여러가지로 혼란을 겪고 있는 이 사회를 바르게 보존하는 소금이 되어 민족의 통일을 여는 등불이 되도록 합시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공동체에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게 내리시기를 기도합니다.
1995년 12월 3일 대림 첫주일에,
천주교 안동 교구장 박석희.이냐시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