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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숨쉬는 역사

[박석희이냐시오주교] 2000년 사목교서 -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천년을
  • 작성자 홍보전산
  • 작성일 2025-09-26 오후 2:13:47
  • 조   회 65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천년을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1.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2000년 대희년을 잘 맞이하기 위하여 개인과 가정,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 열심히 준비해 왔습니다. 한 밤중에야 도착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처럼(마태 25, 1-6) 제각기 자기 등불에 기름을 준비하며 대희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시대에 구세주 강생 2000년 대희년을 맞게 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 자녀로서 창조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며 살게 된 것도 참으로 복된 일인데 그리스도 강생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2000년 대희년을 계기로 한 세기가 아니라 한 천년대가 바뀌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제이천년기를 보내고 제삼천년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을 깊이 성찰하고 뉘우쳐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이에 교구 사제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천년을 2000년 대희년의 우리 교구 삶의 지표로 정하였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님

 

2. 평소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라면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항상 새롭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다릅니다. 유한한 인간과의 만남이 아니라 무한한 하느님의 아드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만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는 작아지고 그분은 커지십니다. 그분께서는 아무리 만나고 또 만나더라도 한없이 풍부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의 유일한 구세주이시요, 그분 홀로 하느님을 계시하고 하느님께로 만민을 인도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교회의 선교 사명, 5). 새로운 천년기가 열리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인류 역사의 목적이요, 역사와 문명이 갈망하는 초점이며 인류의 중심이고 기쁨이며 갈망을 충족시켜 주시는예수께서는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요한 14, 6)고 하셨습니다(사목 헌장, 45).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3. 우리는 지금 새 천년을 맞이할 변화의 시점에 있습니다. 시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하지만 변하지 않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은 변하지 않으시면서 인간과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불변하는 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 13, 8). 항상 변화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진정 복음입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새롭게 되면서도 세상 변화에 두려움 없이 대처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 및 기술은 항상 변합니다만 인간이 갈망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이러한 모든 갈망을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입니다. 역사의 중심이요 불변하시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은 더욱 새롭게 변화되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새 하늘 새 땅과 성찬례

 

4.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살릴 수 있는 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에서 나옵니다. 이 생명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자연의 생명을 살릴 수도 없고 자연의 생명에 귀의함으로써 인간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생명만이 인간과 자연 생명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노라”(요한 10, 10),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 34-35). 이와 같이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은 곧 당신 자신입니다. 나아가 예수께서 약속하신 이 생명의 빵은 오늘도 성체성사 안에서 하느님 생명의 원천으로 인류에게 계속 내어주십니다”(제삼천년기, 55).

 

5. 생명 존중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환경 보존 운동은 언제나 성찬 거행에서 시작하고 힘을 얻어야 하며, 이 운동을 전개하는 인간 역시 성찬 안에서 끊임없이 회개하고 쇄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빵과 포도주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이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성령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며 이 힘에 의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쇄신되고 변화될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43 참조). “성찬례는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요 분명한 징표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405).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 거행과 참례를 자주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이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일 중에 미사 참례가 제일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 깊이 새기고 주님의 성체를 신앙으로 모심으로써 우리는 새롭게 됩니다. 성찬 거행은 피조물의 마지막 쇄신입니다. 미사를 통하여 회개하고 쇄신되었다는 표징들은 우리 삶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해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곳에는 항상 이 표징이 드러나고, 생명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곳에도 이 표징은 드러납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묵시 21, 5).

 

성찬에 초대받은 복된 사람들

 

6.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생명을 풍부하게 하는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이 성찬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새 천년을 위하여 나는 어떤 신자가 되고자 하는가?, 나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 본당은 어떤 본당이 되어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 성찬례에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초대하시는 이 성찬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하며 주님의 초대를 받고도 아직 머뭇거리는 사람들도 이 잔치에로 인도해야겠습니다.

성체성사는 복음화의 원천이며 절정입니다. 성령께서 당신 사랑의 힘으로 일상 양식을 천상 음식으로 변화시키시듯이 우리도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을 천상의 것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고, 복음화 운동이고 선교 활동이며 동시에 생명과 환경을 위한 운동입니다.

 

7. 우리 삶의 터전이며 성화의 터전인 안동교구는 농촌 인구의 노령화와 감소로 사목 활동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제와 수도자, 본당의 모든 신자들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농촌이라 전교하기가 힘들다면서 쉽게 좌절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교구 현실 속에서 선과 아름다움이 있음을 보아야합니다. 중소 도시와 농촌 지역에 사는 우리 교구민들은 전통적인 삶과 따뜻한 인정, 단순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정과 단순한 마음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비옥한 터전입니다.

예비 신자의 수가 줄고 전교가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안동교구에 소속된 것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우리는 불림을 받았습니다. 신자의 수나 질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성소를 먼저 생각합시다. 가톨릭 신앙을 선포하라는 말씀은 2000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간단한 이 예수님의 말씀은 선교에 대한 얼마나 의미있는 선언입니까? 이 말씀은 단순한 제안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과 열성, 전 존재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통해 당신 구원 사업을 계속하고자 하십니다.

 

8. 오늘날의 대중 문화는 인간의 이기심을 조장하면서 인간 개인의 품위나 가치를 무시합니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차원에서 선교가 어렵다고 일반화시키는 것은 대중 문화의 거짓에 속는 것입니다. 대중 문화 속에서 살아도 개인의 차이는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품위와 차이를 존중하면서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을 성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전통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전통을 타고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 진정한 한국인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변화된 한국인이 되는 것이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고 참된 토착화입니다. 부모님께 효를 다하고 어른을 존경하고 친구들 사이에 신의를 지키고 국가에 충성하는 이 모든 가치들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에 일치시켜 하나되게 함으로써 우리 문화를 복음화 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웃을 성찬에 초대하고 우리 문화도 성찬에 초대함으로써 함께 복된 이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과 환경

 

9. 성체성사의 해인 올 2000년 대희년을 우리 교구는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해로 정했습니다. 생명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운동이 곧 환경 보전 운동과 직결되기 때문에 생명운동과 환경보전운동은 하나입니다. 산업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하지만 자연 환경의 파괴로 오히려 인간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 전 선각자들에 의해 제기 되었으며 그 동안 수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생명과 환경 보전 운동은 참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 운동을 언급하는 것은 성체 성사 안에서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우리의 신앙 때문입니다.

 

10. 자연과 인간은 한 하느님을 창조주로 모시는 공동운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간 이외의 창조물은 스스로 하느님께 응답하거나 찬미를 드리지 못하고 인간의 말을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물을 위한 사절이요 봉사자며, 피조물의 사제들입니다. 인간이 창조물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사제가 되지 않으면 자연은 질식하고 신음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로마 8, 22-23).

 

11. 오늘날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원인은 바로 죄 많은 인간의 이기심과 편리 추구 때문입니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온 역사는 인간의 죄만큼이나 오래됩니다. 파괴된 환경을 보는 것은 곧 죄 많은 인간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회개없이 환경과 생명을 위한 운동을 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잘못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인간이 타인을 미워하면서 또 이기심이 가득한 독선적인 자세로 살면서 생명과 자연 환경 보전을 위한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당신 제물이 되게 하소서

 

12.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교구내 모든 신부님들과 안동교구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든 수녀님들,

우리 자신부터 먼저 성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터전을 성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길이며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우리를 영원한 제물로 완성하셨습니다”(성찬기도 제 3양식).

이제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되새기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천년을 시작합시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 68).

 

 

19991128일 대림 첫 주일

  천주교 안동교구장 주교 박석희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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