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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숨쉬는 역사

[인물] 나성도 아르멜 신부님
  • 작성자 홍보전산
  • 작성일 2025-12-18 오전 10:06:32
  • 조   회 20

머리카락 판 돈으로 아침식사를!

-나성도 아르멜(Armel Durand) 신부님 이야기-

 

파리외방전교회 사제 가운데 현재까지 교구에 적을 두고 계신 분은 두봉 주교님과 나성도 신부님, 그리고 한상덕 신부님입니다. 두봉 주교님과 한상덕 신부님은 우리 교구에 계시기에 자주 뵐 수 있으나 나성도 신부님은 서울 가르멜수녀원에 계시며 가끔 들리시기에 뵙기가 어렵습니다. 교구 50년사를 준비하면서 신부님으로부터 당신이 계셨던 봉화·울진 본당과 후포 신자들 그리고 주변의 풍광을 담은 빛바랜 작은 사진들이 담긴 두 권의 노트와 고이 간직하고 계시던 각종 서류, 편지, 도면, 영수증 등을 받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며 당신의 애정과 열정이 가득 배여 있는 자료를 건네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9586월 사제품을 받으시고 12월에 한국에 오셨습니다. 1962년 대구 신암 본당 주임으로 계시다가 1964년 봉화 본당으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안동교구와 연을 맺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오지인 봉화는 오죽했겠습니까? 신부님은 어려운 이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고 한센인들을 위해 갱화원 공소를 설립하셨습니다. 또한 신자와 극빈자의 자녀를 위해 봉화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아교육을 정착케 하는 등 그 노고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두음에서 J.A.C(가돌릭농촌청년회)를 처음으로 만들어 나중에 가톨릭농민회로 커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신부님께는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외진 두음 공소에서는 신자들과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 보면 신부인 자신보다 신자들이 먼저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고, 성사를 줄 장소가 없어서 닭장 안에서 성사를 주셨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는 돈이 다 떨어져 밥을 먹을 수 없어 굶고 있었는데 어떤 부인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교무금을 내주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서 옆에 계시던 두봉 주교님을 보고 나 고생 하나도 안했어요.”하시며, 주교님 들으시라고 큰 소리로 어떻게 수녀님과 함께 생활하는데 생활비를 만원을 주냐?”고 하시니 두봉 주교님께서 다 내 잘못이다.”하시면서도 한상덕 신부님과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적게 먹었으니 지금까지 살아있지. 아니면 벌써 갔다!”고 되레 큰 소리로 받으셨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는데 미국에서 온 옷들 중에 큰 브래지어가 섞여 있었나 봅니다. 겨울이었는데 시골 할아버지 한 분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으니 그것으로 귀마개를 하고 성당에 오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1970년 울진 본당으로 옮겨오면서 가난에 허리를 펴지 못하는 어부들의 삶에 직면하게 됩니다. 한국전쟁 때 참전한 벨기에 장성들이 한국의 어부들을 위해 돈을 보낼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신부님은 1972해성협업회로 발전할 해성친목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조합의 배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등에 많은 편지를 보내고, 해외로 가서 모금을 하는 등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배가 다 되어 엔진이 필요한데 일본에 가서 사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일본을 갈 여비가 없었습니다. 무작정 프랑스 대사관에 찾아가 일본에 가야하는데 비행기 삯이 없다 하니 마침, 기적처럼, 일본에 있는 대사에게 전달할 비밀서류가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전하라고 하여 서류를 전달하고 공짜로 오사카로 가서 엔진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리하여 19748730톤급 시속 165마일의 최신식 어선을 건조하여 해성 1를 진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후포 어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위한 신부님의 열의에 힘입어 해성 2, 3호가 진수되었습니다.

한 생을 이국 멀리 오셔서 온 사랑과 열정을 쏟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안동교구 50년사 편찬위 간사 박효진 유리안나-

 

<추신>

* 울진 본당에 계실 때, 가난하여 거처할 곳이 없는 학생이 있어 강당에 방을 마련하여 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그 데레사가 지금까지도 신부님을 살뜰히 보살펴주고 있다 합니다.

 

* 앞으로 신부님의 계획은 이번에 프랑스에 가서 안동교구에 있으면서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보고서, 편지 등 자료를 본인이 펜으로 쓴 것이라 다른 사람은 알 수 없기에 그 자료들을 모두 타이핑하여 신부님이 세상을 달리 하신 다음이라도 번역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할 것이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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