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의 약력과 희망(포부)” (1)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1846년 순교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한 병인박해가 일어난 지 꼭 180년째 되는 해이다. 이런 해에 특별히 순교자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안동교구 공동체 모든 이에게 감히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루카17,6)으로 교구 공동체를 위해 두 손을 모아 “축복을 내려 주십사”라고 정성껏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려본다.
1969년 7월 25일에 주교로 수품되고, 안동교구 첫 교구장으로 착좌한 두봉 주교의 그간의 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봉 주교는 1929년 9월 2일에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다. 1947년 오를레앙 “생 끄로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으며, 1951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53년 6월 9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인 1954년 한국으로 파견되어 대전 대흥동 주교좌성당에서 10여 년을 보좌로 사목하는 동시에 전국학생회 지도신부, 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대전교구 학생회 지도신부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 9월 3일부터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으로 자리하고, 1969년 5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안동교구 설정과 동시에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69년 7월 25일에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주교서품식을 받고 신생 교구인 안동 교구장으로 취임하였다.
안동교구의 첫 교구장으로서 두봉 주교의 인품은 이미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본당 보좌신부 시절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극히 겸손하고, 검소하고, 어린이와 같은 순박하고 단순한 성품으로 격의 없이 모든 신자들과 밝은 대화로 학생과 신자들의 영성 지도에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특히 일반인들도 대전 MBC 방송의 ‘5분 명상’을 통하여 그의 깊은 신심과 철학에 공감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흥동성당 보좌 시절엔 추운 겨울에도 난롯불을 피우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고, 절약하고 극기하는 생활 모습은 이를 바라보는 주위의 사람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1969년 5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안동 교구장 주교 임명을 받고도 처음엔 겸손되이 사양하였으며, 약 한 달 동안의 기도와 묵상 후에 비로소 주님께 순명하는 삶의 정신으로 주교직을 수락하였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그의 깊은 신심과 온유한 성품을 소유한 인물이었음을 잘 알 수가 있겠다.
두봉 주교는 1969년 7월 25일 교구장 수락 연설에서 “세상이 변할지라도 내 말은 변하지 않을 것”(루카21,33)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하셨으므로 우리 다 같이 진복팔단의 정신에 의해서 현세와 후세에서 진복(眞福)을 누릴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