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양심
지난 10월 18일 있었던 농민, 근로자, 그리고 양심수들을 위한 기도회 관계로 오늘 이 시간에 정호경 신부님과 류강하 신부님이 안동 경찰서에 구속 중이십니다. 우리 교구 창설 이래 처음 당하는 일이므로, 우리 교구 모든 신부님들은 한 주일 전부터 교구청에 모여 기도를 바치고, 연구를 하며, 주님의 뜻을 찾으면서 밤과 낮을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이 주일인데, 오죽하면 우리 교구의 모든 신부들이 제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지 않고 이 공동 미사를 지내기로 했겠습니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오늘 우리 교구의 모든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자리를 비워야 했는지 신부님들이 여기에 와 계시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 드리는 이 공동 미사는 다른 본당 신자들도 신부님이 연행되어서 얼마나 서러운지를 느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리고 그것으로써 우리 교구의 모든 신부들이 한뜻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구뿐만 아니라, 다른 교구에서도 후원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다른 교구에서 찾아오신 많은 신부님들과 함께 공동 미사를 드렸고, 내일도 더 많은 신부님들이 나오셔서 공동 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매일 저녁 7시 30분에 목성동 본당에서 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두 분 신부님들이 구속 중에 계시는 것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10월 18일 기도회는 분명 농민, 근로자, 양심수들을 위한 기도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죄가 있다 하여 구속되셨습니다. 처음에는 다섯 분이 연행되셨는데 그들 중에 우리 교구 소속인 이정모 신부님과 이춘우 신부님이, 그리고 청주교구 소속인 곽동철 신부님이 풀려나오셨습니다만 법적으로 어느 정도 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풀려 나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당국과 우리 서로가 공동으로 느끼는 것은 두 분 신부님이 양심에 의해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지 다른 신앙을 가진 분들이든지, 서 당국에서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일을 하시는 그분이든지, 아무도 이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소신이 있어서, 확신이 있어서 법률을 위반했습니다.
여러분, 이 점을 우리가 이 자리에서 생각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두 분 신부님이 양심에 의해서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 사실을 한 번 생각 해봅시다. 물론 사회 질서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 사실을 강조할 것입니다. 양심 문제든 아니든, 그리고 이유가 무엇이든 그분들은 법을 내세웁니다. 책임자 되는 분들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시는 순경, 형사, 정보원 되시는 분들도 무슨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법적으로 위반했다면 했지, 이유를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가운데 계시면서, 제 말을 녹음하시는 분들도 무슨 개인 판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들은 제 직업에 의해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그분들이 불쌍하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분들이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건대 그분들이 일하는 노동 조건이라고 할까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시는 것도 안 됐고 뿐만 아니라 개인 의견조차도 가질 수 없는 점을 두고 불쌍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분들은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 신자, 많은 개신교 신자, 그리고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은 양심에 의해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을 달리 생각합니다.
우리는 양심에 의해서 법률을 판단합니다. 양심적으로 법률을 생각 해볼 때 법률에는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법률이라고 해서 다 좋다고 보지 않습니다. 좋은 법이 있는가 하면 나쁜 법이 있다고 봅니다.
신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법이 다 좋다고 보십니까? 무조건 모든 법이 다 좋다고 보십니까? 집권자들이 선포하는 모든 법이 다 좋다고 보십니까?
김일성이 이북에서 선포하고 강행하는 모든 법이 다 좋다고 보십니까? 그 법이 나쁘다고 보지요. 우리 중에 김일성이 선포하는 법을 찬성하는 이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50여 년 동안 자유를 잃고 설움을 당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본 사람들이 선포하고 강행한 법을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해마다 삼일절을 기다립니다. 왜 그렇게 하지요? 그 당신 민족적 의분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던 사람들은 그때의 법률로 보자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저지른 셈입니다. 다시 말해 법을 위반한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분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히려 그 법률의 부당성을 고발했던 것을 우리는 찬성합니다. 왜? 우리는 그 법이 잘못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노예 상태로 사는 것이 싫다고 부르짖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무릅쓰고 제 양심대로 말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법적으로 잘못한 사람들이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보기에 그들이 잘한 것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어 생각하면 이승만 시대를 생각할 수 있지요? 4.19 용사들이라고 부르는 피 흘린 많은 학생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법을 위반한 사람들이지요. 법적으로는 잘못했기 때문에 총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감히 말 못하는 것을 그들이 말했기 때문에, 법이 어떻든 제 양심대로 말했기 때문에 '장하다'고 우리 서로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영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순교자를 모시고 있습니다. 순교자들 중에 1백여 명이 복자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복자라고 부르는 것은 교황님이 전세계적으로 그들을 본받아도 좋다고, 아니 본받아야 된다고 발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는 노인도, 부인도, 가장도,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제가 어제저녁 젊은이들도 오늘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는데, 그들 복자 중에는 13살밖에 안 되는 유대철도 끼어 있습니다. 그들을 법적으로만 생각하면 어떠한 사람이겠습니까? 법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사형수였고, 사형을 당해야만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법을 위반했기에 사형 선고를 받았겠으며, 사형이 집행되었겠습니까? 어떤 이는 칼을 맞았고, 어떤 이는 교수대에 매달렸습니다. 그 당시 사형이 집행된 시체들을 얼른 치우지 않도록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체를 보면서 법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순교자 중에 김대건 신부님도 끼어 있는데, 어째서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도 김 신부님의 이야기가 나옵니까? 그분은 법적으로 보면 사형수입니다. 나라의 법을 위반한 사람입니다. 국가가 볼 때는 이런 사람은 회두 할 가망성이 없다고 해서 죽였던 사람입니다. 어째서 이런 사람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까? 법률이 어떻든 제 양심대로 했고, 제 소신대로 했고, 제 믿음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법보다 더 강한 것이 있고, 법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고 법보다 우선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가 중에 '장하다 복자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왜 장합니까? 법보다 제 양심을 속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가지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수님부터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사형되셨고 그때 씌어진 죄목은 정치에 간섭했다는 죄목입니다. 다음은 사도들, 그다음 교회의 수만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의 순교자들은 성경 말씀대로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람보다 우선 하느님께 순명해야 된다고요. 그들은 이 말씀을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왜 오늘 미사 중에 빨간 제의를 입은 줄 아십니까? 우리 천주교회 전통으로 수많은 순교자들, 즉 피를 흘린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빨간 제의를 입었습니다. 그분들이 다 법적으로 잘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다 법률을 위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법률을 지킨 것보다 위반한 것이 잘한 일이라 봅니다.
가까운 법 중에는 모자보건법이 있습니다. 이 법이 잘되었다고 보십니까? 우리는 모자보건법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의해서 이 법을 우리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의해서 윤리적으로 볼 때 이 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치입니다. 모자보건법을 지적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치입니까? 우리는 국가법을 양심에 의해서 판단합니다. 그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양심에 의해서 법률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두 분 신부님이 외친 것이 법에 저촉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촉이 되든 안 되든, 아니 그 분들이 말한 것이 옳든 그르든, 더 나아가 우리 중에 헌법이나 긴급 조치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든 안 계시든, 그 신부님들이 구속을 무릅쓰고라도 제 소신대로, 제 확신대로, 제 양심대로 살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장하다고 봅니다. 제 양심대로 말했던 것이 이유가 어떻든 장하다고 봅니다. 그만큼 양심의 소리를 질렀던 것이 우리로서는 영광스럽다고 봅니다.
다섯 분이 연행되셨다가 그 중에 세 분이 풀려나왔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분들이 양심대로 말했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풀려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연행되고 난 다음 겁이 나서 그 분들이 양심을 속였다는 것이 되겠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런 문제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류강하 신부님과 정호경 신부님의 문제도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한가지 방법은 법률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법을 적용하면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죄로 몇 년 교도소에서 고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우린 대단히 섭섭하겠습니다만, 이미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는 함세웅 신부, 문정현 신부,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 김지하 같으신 분 또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수많은 양심수 중에 두 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법을 적용하면 그렇게 되겠습니다. 제가 그것을 막지 않겠습니다. 당국에서 법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당국에서 아량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미 다섯 분 중에 세 분에게는 아량을 베풀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왔습니다. 나머지 류강하 신부님, 정호경 신부님께도 아량을 베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국에서도 이렇게 생각해 보실 수도 있지요? 그 두 분 신부님이 법을 위반했고 또 기소해야 할 일이지만, '그 두 분의 마음이 곱다. 그 두 분은 양심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양심이 맑다. 장하다. 아니 그런 장신을 가진 이가 많아야 정신무장으로도 이북을 상대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곱기 때문에, 양심대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량을 베풀어 석방을 시켜주자‘고 말입니다.
저는 당국의 아량을 바랍니다. 이미 세 분을 석방시켜 준 것처럼 앞으로 두 분도 석방시켜 줄 것을 바랍니다. 이상 저는 우리 사제단의 태도를 밝혀드린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문제를 우리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한 주일 전부터 매일매일 많은 기도를 드려왔고, 앞으로도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의 문제를 계속 신자답게, 양심적으로 우리가 판단해야 되겠고, 우리의 양심대로 무엇이든 실천해야 되기 때문에 주님의 많은 은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자 여러분!
부디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이 일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 우리 국가가 더 많은 주님의 성총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그리고 열심히 기도를 바쳐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1977년 10월 30일
천주교 안동교구 교구장 두봉 레나도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