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틔움(신대원 요셉 신부)-
초대 교구장의 새로운 사목 구상-2
안동교구가 5개 지구로 나누고 지구 별 공동 사목을 진행한 것은 서로 가까운 이웃 본당끼리의 협조와 유대강화 및 지구 사목회를 통하여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목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공동 사목을 진행 함으로써 사목 활동에 있어서 편리하고 능률적인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안동-의성지구는 1980년 1월에 안동지구(목성동, 동부동, 태화동)와 의성지구(의성, 안계, 다인)로 나누었는데, 이러한 지구 별 공동 사목회와 공동 사목활동의 추진 등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안동교구가 처음으로 시행한 사목활동이었다.
아울러 안동교구는 교구설정 이후 처음으로 1969년 12월 14일 안동 주교좌성당에서 두봉 주교의 집전으로 3명의 새 사제를 배출하였다. 서울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류강하 베드로, 최금복 마태오 그리고 광주 대건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정모 요셉 신부가 그들이었다. 서품받은 이날, 류강하 신부는 의성본당 주임으로, 최금복 신부는 안동본당 보좌로, 이정모 신부는 점촌본당 보좌로 각각 발령을 받았다. 외국인 신부에 비해 방인(邦人) 사제가 월등히 부족했던 안동교구로서는 새 사제의 탄생으로 교구 사목에 더욱 활기를 띨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1월 1일 두봉 주교는 본당 사제 인사이동을 단행하였다. 이길준 바오로(교구청), 배세영 마르첼리노(영주본당), 김욱태 레오(점촌본당), 정호경 루도비코(다인본당)으로 각기 전보발령하였으며, 동시에 교구내 모든 단체의 활성화를 위하여 단체 책임사제를 임명하고, 그 활성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지도 및 담당 신부는 다음과 같다. 구인덕 첼레스티노(구라사업), 송만협(전례위원회 교구대표), 안덕화(레지오 마리애), 이길준(J.A.C 및 사회사업), 차기선(일치위원회 교구대표), 문세화(J.O.C), 최금복(학생회).
이렇게 본당 사제들과 제 단체 지도신부를 임명한 두봉 주교는 본격적으로 안동교구 사목 방향에 대하여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두봉 주교는 교구 총대리에 구인덕 신부, 교구 상서국장에 이길준 신부를 임명하면서 교구 내 안동, 서문동, 남성동, 예천, 함창, 봉화 영양 등 7개 본당에 대해서 사목 방문 및 교구 관할구역의 제반 사안을 파악하기 위하여 각시군 별 가구 및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아울러 각 본당 회장 연수회, 전교 회장 연수회, 복사단 연수회, 사제-수도자 연석 총회 등을 개최하여 교구 사목활동의 짜임새를 공고히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한편 1969년 12월에는 1970년의 사목 방향을 제시하는 사목 교서를 교구 사제들에게 발표하였는데, 사목 교서의 주된 내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결정 사안들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결정문들을 일선 사목활동에 반영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새로운 사목 구상이었다.
두봉 주교는 1969년 9월 2일 자로 1969년도 사업 계획 및 경과보고를 발송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7개의 본당 방문과 2차례에 걸친 주교회의였는데, 주교회의 1차 회합은 광주 대신학교 문제이고, 2차 회합은 시노드를 위한 준비 모임이었다. 특히 각 본당 순회 활동 및 사제. 수도자. 평신도 대표에게 발송한 몇 가지 설문에 관하여 교구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연수회는 교구 내의 사목활동에 관해서는 수녀 회합을, 평신도 대표 회합에서는 평신도들의 위상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사제회합에서는 교구의 제반 문제를 연구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마쳤다.